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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한 장군 맥아더 조회수 : 2588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4-12-30
맥아더는 육군 고위 장교인 아버지 아서 맥아더와 그에게 큰 영향을 끼친 야심적인 어머니 메리 하디 맥아더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1903년 웨스트포인트의 육군사관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한 후 10년 동안 부관과 하급부대 장교를 지내고, 이어 4년을 일반참모로 복무했다.

1914년에는 멕시코의 베라크루스를 점령한 미군 부대에서 몇 달을 지냈다. 1917~19년에 제42사단의 참모진에 배속된 맥아더는 제1차 세계대전의 프랑스 전투작전과 뒤이은 라인 지구 점령군의 전투에 참여하면서 참모장·여단장·사단장 등으로 직책을 바꾸어가며 활약했다. 1920년대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교장으로 재임하면서 광범위한 개혁을 실시하였다. 그는 필리핀에서 2차례 사령관직을 맡았으며, 미국의 2개 군단을 통솔했고, 1928년에는 미국 올림픽 위원회의 위원장직을 맡기도 하였다.

1930년 육군 참모총장으로 발탁되면서 대장으로 승진되었다. 군의 최고수뇌로서 그 후 5년 동안 그가 주력한 사업은 대공황의 타격으로 약해져가는 미 육군의 군사력을 보존하는 일을 하다가 1937년 12월 미육군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현역으로 소환된 맥아더는 1941년 12월에 필리핀에서 일본군의 진격을 지연시키는 영웅적인 전투를 수행했다.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자 맥아더는 즉시 주한 유엔군 사령관으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그해 9월28일 역사적인 인천 상륙작전을 수행하였다. 이 상륙작전이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나라는 완전히 공산화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러나 이 상륙작전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참모진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작전이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는 마지막 토론에서 일부 반대하는 장성들에게 특유의 과장법을 빌려 “나는 지금 찰칵찰칵, 운명의 초침 소리를 듣고 있다. 당장 행동하지 않으면 우리는 다 죽는다.”라고 비장한 결론을 내렸다. 인천상륙작전은 시작되었고 맥아더는 최소한의 사상자로 승리했다. 뒤이어 계속된 수도 서울 탈환작전도 성공, 한국군은 그해 9월28일 중앙청 꼭대기에 태극기를 꽂았다.

훗날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을 회고하면서 “이 작전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수행하므로 성공한 작전”이라고 고백하였다.
서울을 수복한 후 그는 서울 시청 맞은편에 있던 국회의사당 앞에 도착하자 차에서 내려 기도하였다. “주ㅋ님게서 이루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서울 수복기념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의 자비로운 섭리로 유엔군은 대한민국 수도 서울을 공산 전제정치로부터 해방함으로써 서울 시민들은 불가침의 개인 자유와 존엄성을 으뜸으로 하는 생활방식을 변함없이 누릴 기회를 회복하게 되었다”라고 역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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