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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실낙원과 복락원의 저자 밀턴 ① |
조회수 : 2687 |
작성자 : 현대교회 |
작성일 : 2004-12-05 |
존 밀턴(1608∼74)은 존 버니언과 더불어 17세기 영문학을 대표하는 청교도 작가이다. 밀턴은 예술에 있어서 위대한 인물이기 보다 위대한 인생을 산 신앙인이었다.
그는 1608년에 영국 런던의 브레드가에서 태어났다. 개신교로 개종한 후 런던으로 나와 공증인 노릇을 하고 있던 그의 아버지는 유능한 장로교 목사 토머스 영을 가정교사로 두고 어린 밀턴에게 철저한 예능교육을 시켰다. 목사가 되길 원했던 밀턴은 1625년 케임브리지 크라이스트 칼리지에 입학했다. 그곳에서 지도교수였던 윌리엄 차펠과의 의견 충돌로 한 학기 동안 정학을 당했다가 복학,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였다.
1632년 석사 학위를 받은 후 그는 목회의 꿈을 접고 곧장 은퇴한 아버지가 머무르던 해머스미스로 가 많은 고전을 읽고 즐기며 시인으로 살았다. 이 시기동안 그는 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 후 밀턴은 런던으로 나와 사설 기숙학교를 열고 학생들을 모아 가르쳤다. 우선 밀텀은 누님의 아들 존과 에드워드 필립스를 가르쳤는데, 세인트폴 학교와 크라이스트 칼리지에서 배웠던 것을 토대로 아주 엄격하게 교육했다.
밀턴은 32세에 포리스트 힐의 보안판사이며 유명한 왕당파 정치지도자였던 리처드 파월의 장녀 메리 파월과 결혼하였는데, 이때 메리의 나이는 17세였다. 하지만 집안의 정치적 이유 때문에 메리는 결혼한 지 얼마 안돼 친정으로 돌아가고 만다.
그 사이에 밀턴은 4편의 이혼에 관한 팸플릿을 섰다. 그러나 밀턴은 메리와 3년 만에 화해하고 재결합한 후 아들 하나와 딸 셋을 낳았지만 1652년 5월에 메리가 사망했고, 이어서 같은 해 6월에 아들 존도 죽었다.
1652년에 메리가 죽은 후 홀몸으로 있던 밀턴은 시력마져 잃게 되었는데 1656년 11월12일에 재혼했다. 이 시기는 외국어장관직을 맡고 있던 때였다. 재혼의 상대는 20년 연하의 캐더린 우드콕이라는 여성이었는데, 그녀는 결혼한 지 1여년만에 사망하고 이어 1657년에 출생할 그녀의 딸 캐서린도 죽고 만다.
그후 밀턴은 그리던 정치적 이상국가였던 공화정이 무저미녀서 11년간이나 생명을 걸고 헌신했던 외국어장관직에서 쫓겨나고 만다. 이때 밀턴의 나이는 54세였고, 두 눈의 시력을 완전히 잃은 상태였다. 공직에서 물러난 밀턴은 별달리 수입도 없었다. 그랴말로 먹고 살아가는 것이 너무 어려웠다. 세 딸이 있었으나 그녀들은 집안의 어려운 살림을 알지 못했다. 이때 밀턴의 의사 친구 파젯이 그의 처지를 동정하여 자기 사촌 엘리자베스 민셜을 소개했고 그는 당시 24세였던 그녀와 세번째 결혼을 한다. 민셜은 밀턴 일가를 위하여 힘썼지만 늘 세 딸과 심한 갈등을 겪었다고 한다.
밀턴은 1674년 11월8일 "실낙원"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기고 6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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