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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한글성서의 번역과 반포의 길을 연 캔뮤어 선교사가족 |
조회수 : 3109 |
작성자 : 현대교회 |
작성일 : 2007-06-11 |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한글 성서의 번역과 반포의 길을 연 캔뮤어 선교사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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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에는 영국성서공회 한국지부 초대 총무로 성서 번역과 반포의 새 길을 튼 켄뮤어 선교사 아들의 묘지가 있다. 그의 이름은 고돈 켄뮤어이며, 1896년9월10일 출생하여 1897년1월1일 사망했다. 묘비에는 ‘켄뮤어 선교사 부부의 어린 아들’이라 기록되어 있다. 이와 연관하여 영국성서공회의 한국 총무였던 켄뮤어 선교사의 삶과 업적을 살펴보고자 한다.
알렉산더 켄뮤어는 1856년 영국에서 출생했다. 스코틀랜드 글래스고대학 재학 중 중국 선교사로 지원하여 1886년 1월 부인과 함께 홍콩에 도착하여 다음해 1월까지 중국의 남부지방과 마카오에서 선교사로 활동했다. 그러던 중 그는 1893년 5월 8일 서울을 방문하게 되었다. 한국 방문 길에 만주 심양에서 한글성서를 번역하며, 활동하던 로스목사를 만났다. 이때 ‘로스 번역본’ 성경은 반포에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성경 내용이 한문체가 많고, 용어에 북쪽(의주) 지방성이 두드러지며, 번역상의 오류와 인쇄 등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는 한국 방문 길에 ‘로스번역본’이 아닌 새로운 한글 성서 번역의 필요성을 인식했다.
한편 언더우드 선교사도 1890년 로스역의 무용성을 앞장서 주장하며 “빠른 시일 내에 새 번역본이 나와야한다.”고 역설한바 있었다. 그리고 헐버트선교사에 의해서도 비슷한 지적이 제기되었다. “한국어는 중국어나 일본어와는 완전히 다르므로 순 한글 성경의 번역과 인쇄가 필요하다.”고 했다.
서울에 도착한 켄뮤어는 상임성서위원회에 참석하여 ‘중국위원회’를 모델로 한국 상임성서위원회조직을 개편하도록 제안했다. 그 후 영국, 미국, 스코틀랜드의 성서공회가 연합하여 성서번역 사업을 추진하기로 했다. 켄뮤어는 1895년 만주-한국 담당 임시 총무로 선임되었다.
그는 우선 서울에서 영국성서공회 한국지부를 개설하고 초대 총무가 된후 서울에 정착하면서 성서번역과 반포사업을 지휘하며, 1900년 신약 전체를 번역하는데 크게 공헌하였으며, 성경판매를 위하여 서울에 중앙보급소와 각 도시에 성경판매보급소를 개설했다. 권서사업을 재정비하였다. 그는 “권서사업은 하나님의 왕국을 앞당기는데 가장 귀중한 도구이다. 성령님께서는 우리가 전혀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인쇄된 말씀을 풍성히 사용하고 계신다.”고 했다.
그 후 구약성서를 번역하던 중 신경쇠약으로 쓰러져 세브란스 병원에 입원했으나 의사의 장기요양 권고로 하던 일은 밀러 부총무에게 일임하고, 1904년 5월 서울을 떠나 일본과 미국을 거쳐 런던으로 돌아갔다.
켄뮤어 선교사는 한글 성서의 새로운 번역과 반포를 통하여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복음을 접할 수 있는 핵심적인 선교사역을 담당한 고마운 분으로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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