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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평양 부흥회 이후 한국교회의 신앙 -1 조회수 : 2696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03-22
1907년 원산과 평양에서 시작된 부흥의 물결은 남한 지역에서도 드높이 일어났다. 한 장로교 선교사는 목포에서 일어난 성령의 체험을 이렇게 말하였다.

“게르딘 목사가 성경을 읽고 공의와 젤제, 심판, 그리고 죄의 무서움과 뉘우침에 대해서 말하자, 죽음과 같은 정숙이 모든 사람 위에 내려 덮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이 메스처럼 각 사람을 수술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앞은 다투어 감추었던 죄를 고백하였고, 힘센 어른들이 어린아이와 같이 통곡하였다. 그리고 그 후 그들의 얼굴은 생명으로 빛났다.“

이렇게 원산과 평양, 서울, 그리고 목포에서 일어나 전국의 교회와 신학교, 그리고 학교들을 통해서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진 부흥회의 정신과 그 열정은 한국 교회의 신앙의 형태를 형성하게 되었다.
한편 당시 한국교회는 독특한 위기에 직면해 있었다. 그것은 교회 안에서 정치적인 요소들이 강하게 나타난 것이다. 기울어져 가는 나라의 운명을 방관할 수 없었던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왔고, 그들은 교회를 통해서 민족적 울분을 터뜨렸다. 선교사들은 이러한 경향을 교회의 본래성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1907년의 부흥운동을 통해서 한국 교회를 비정치적인 피안적 교회로 만들려는 강렬한 의도가 태동되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선교사들은 교회가 정치적인 관심을 극소화하고 정지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지도하기 시작하였다. 이 때로부터 미국선교사들의 “전천년왕국설”신학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전천년왕국설”이란 그리스도의 재림이 천년왕국 이전에 이루어 질 것이라는 신학적 견해인데, 이 기간에는 배교하는 일과 기근 지진 적 그리스도의 출현 대환란 등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성도들은 복음의 능력으로 무장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견해이다.

이후 정치적인 동기만을 가지고 교회를 찾던 사람들이 상당수 교회에서 정리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교회가 해산된 경우도 꽤 많았다고 한다. 더욱이 교회가 파산되어 기울어 가는 조국의 모습을 보고도 하늘만 바라보는 초월의 신앙을 가지고 산다면, 그것이 나라를 사랑하는 겨레의 종교가 될 수 없다는 생각이 퍼져갔고, 그래서 교회에 대한 비난과 냉소가 가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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