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사
•홈  >  자료실  >  한국교회사

목록보기

  제  목 : 1907년의 평양 부흥회 조회수 : 2755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3-03-22
1907년 1월 14일, 월요일의 일이다. 하디의 부흥회 인도로 여물대로 여문 평양의 감리교, 장로교 부흥회에서 블레어 목사가 고린도전서 12:27절을 읽고 “우리는 다 그리스도의 몸이요, 그의 한 지체들”이라는 설교를 한 후 부흥의 불길이 떨어졌다. 그 후 선교사들과 교회의 지도자들은 지속적으로 사랑과 정의의 실현이 고갈된 세계에 대한 하나님의 간섭을 간구하였다.

교인들의 감동은 놀라왔다. 다음 주일 날 밤, 교회는 “신비로운 경험”을 하였다. 교회는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묘하게도 사람들 틈 사이로 힘있는 영적 압력이 배어있는 듯 했다. 다음 날인 월요일 밤에도 장중한 신비의 세력이 임재하고 있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설 때 신의 임재하심에 압도당하는 느낌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바로 그날, 평양 대부흥회의 감격이 넘치게 펼쳐졌다. 〈런던 타임즈〉의 기사를 보면 “나의 아버지여!”라고 말하자마자 사람들은 밖으로부터 밀어닥치는 강력한 힘에 압도당했다“고 말했다. 교인들은 눈물과 감격으로 밤을 세워가며 기도하였고, 그 감동의 물결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통성 기도의 음성은 신비로운 조화와 여운을 가지고 있었으며, 회개하는 사람들의 울음은 성령의 임재에 압도되는 영혼의 찬양과 같았다.

한 여자 선교사의 평은 이색적이다. “그 통회하는 모습은 마치 지옥의 뚜껑을 열어 놓은 것과 같았다. 살인, 강간, 그리고 상상할 수도 없는 모든 종류의 불결과 음욕, 도적, 거짓, 질투…. 사람들은 부끄러움도 없이 말하였다. 그 어떤 무서운 힘이라도 강제로 이런 고백을 하게 하지는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포에 질려 자신의 죄를 고백했고,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마루에 파묻었다.“

이 부흥의 물결은 시내의 학교에도 밀려갔다. 김찬성이 인도하는 숭덕학교의 기도회에서 채정민이 통회하자, 3백 명의 학생들도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며 통회 자복하였다. 그 불길은 다시 감리교 학교의 학생들과 연결되어 교파의 벽을 뛰어넘어 격류처럼 파급되었다.

이 해 봄에 길선주가 서울에 와서 경기도 사경회를 열어 성령의 도리를 가르쳤고, 이것을 계기로 서울과 경기도 지방의 교회들에도 대부흥의 물결이 파급되기 시작하였다.

 "

  이전글 : 1907년 부흥운동의 배경
  다음글 : 평양 부흥회 이후 한국교회의 신앙 -1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