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보기
제 목 : 평양 부흥회 이후 한국교회의 신앙 - 2 |
조회수 : 2594 |
작성자 : 현대교회 |
작성일 : 2003-03-22 |
1097년에 일어난 대 부흥운동을 통해서 한국교회는 민족적 시련의 비극에서 헤어나올 수 있는 힘을 획득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절망이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나라의 운명에 맞서 정도로 바른 길을 걸어 갈 수 있는 담력을 소유하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부흥운동을 통해서 한국 교회는 신앙의 대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국제 선교협회는 “이 부흥운동을 통해서 신생 한국교회는 독자적인 힘을 갖게 되었다”라고 말하였고, 또한 감리교회의 존스 박사는 “이 위대한 사건으로 인하여 한국 민족교회의 위대한 역사가 출발점에 서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이 부흥운동을 통해서 한국 교회는 남다른 특징을 소유하게 된 것이다.
한국의 초대교회는 그 신앙의 유형이 소박하고, 경건한 소극적인 신앙이었다. 그러나 1907년의 부흥운동 이후 한국 교회는 그 신앙의 형태가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대부흥의 불길이 고린도전서 12장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 몸으로서의 교회가 강조되고, 교회간의 문제나 교회 안의 부조화가 기독론적인 입장에서 새롭게 정리되었다.
또한 원산에서 시작된 부흥운동의 텍스트는 요한1서였다. 이것은 대부흥 운동의 특징을 죄의 용서와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는 것으로 이끌어 갔다. 사람들은 이를 통해서 사랑을 깊이 체험하게 되었다. 한 서양 선교사는 이 때의 부흥운동에 대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지금까지 동과 서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러나 이번 부흥운동은 나에게 두 가지 새로운 사실을 깨닫게 해 주었다. 하나는 한국인의 종교생활이 서양의 그것보다 깊고 순수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서양의 기독교인들이 이들의 기도생활과 철저한 신뢰를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결국 1907년의 부흥운동은 한국 교회로 하여금 신앙생활과 교회의 본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하였고, 이로써 교회가 나라의 독립이나 구국의 이념에 치우치지 않고, 신앙으로 겨레의 운명을 극복하려는 움직임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또한 깊은 신앙은 삶의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는 강조점 때문에 한국 사회의 도덕 재무장 운동에도 크게 기여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교회는 상상을 초월하는 부흥과 성장을 가져오게 되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