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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음악의 어머니 헨델 ① 조회수 : 2816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4-10-10
독일의 할레에서 출생한 헨델은 9세부터 오르간 연주자인 F.차하우에게 사사하여 연곡의 기초와 오르간을 공부하였고,그 후 아버지의 희망에 따라 한대 할레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으나, 18세 때 함부르크 오페라극장에 일자리를 얻어 이때부터 음악가가 되기로 결심하였다.

20세 때 오페라 "알미라"를 작곡하여 성공을 거둔 이듬해 오페라의고향인 이탈리아 로마로 가서 실내악을 작곡하는 한편 피렌체와 베네치아 등에서 오페라 작곡가로 성공을 거두었다.

1740년 하노버궁정의 악장으로 초빙되었으나 휴가를 얻어 방문한 런던에 매료되어 1712년 이후는 런던을 중심으로 이탈리아오페라의 작곡가로 활약하게 되었으며, 그 이후 이탈리아오페라의 상연을 위해 "왕립 음악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수많은 명작 오페라를 작곡하였다.

그러나 1728년부터 이탈리아오페라 작곡가로서 헨델의 명성은 땅에 떨어지기 시작하였는데 그 이유는 당시의 영국의 중산층들이 귀족적인 형태의 이탈리아오페라에 대해 반발하였기 때문이다.

그후 몇차례 이탈리아 오페라의 재기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건강악하와 경제파탄으로 오페라 작곡가 겸 극장 경영자로서의 활동에 종지부를 찍고 말았다.

그라나 헨델은 이 때부터 오라토리오를 작곡하기 시작한다. 1935년 사순절에는 성가작품을 포함한 약15편의 오라토리오를 헤이마케트 극장에 연속 연주하여 오라토리오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높였고, 1736년에는 유명한 오라토리오 "알렉산더의 향연"를 작곡하였다.

그 후에도 오라토리오의 작곡에 전념하여 1741년에는 오늘날까지 예찬되고 있는 고금의 명작 "메시아"를 오나성하기에 이른다. "메시아"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적인 신앙의 정수를 순수하고도 감동 깊게 전해주는 명작이다.

"메시아" 이후에도 그는 "삼손" "벨샤자르"등 뛰언난 오라토리오를 많이 작곡하였으며, 1751년 오라토리오 "입다"를 작곡하던 중 시력을 잃었다. 그러나 실명한 후에도 오라토리오의 상연을 지휘하는 한편 조수의 도움으로 작품 활동에 힘썼다.

헨델은 오페라 46곡, 오라토리오 32곡을 작곡하는 등 주로 대규모의 극음악 작곡에 주력하였지만, 기악방면에서도 상당히 많은 작품을 남겼는데, 특히 유명한 관현악곡모음곡인 "수상의음악"(Water Music) "왕궁의 불꽃놀이 음악"(Royal Firewords Music) 외에도 합주협주곡, 오르간협주곡, 트리오 소나타, 오보에협주곡, 그리고 하프시코드용의 모음 등 주목할 만한 수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헨델은 1726년 영국에 귀화하였으며, 사후에는 최고의 영예인 웨스트민스터 대성당에 매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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