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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감리교회의 창시자 존 웨슬레 John Wesley ④ 조회수 : 2573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4-06-17
그동안 길거리에서 설교를 하던 웨슬레는 1739년 6월에 런던으로 와서 무어필드에 있는 작은 건물을 얻어서 설교 장소로 사용하게 되는데, 이 건물은 이후 38년 동안 전도 운동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복음 전하는 일을 위한 모임을 가지게 되는데 이것이 감리 교단의 첫 걸음이 되었다.

웨슬레는 이곳에서 사역하면서 신자들에게 예배에 참석할 것, 공적인 책임을 다할 것, 금식기도와 성만찬에 경건히 참석할 것, 철야기도 참석하는 것 등을 권하였는데, 마치 초대 교회 모습과 같았다고 할 수 있다.

모이는 사람이 점점 늘어나자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신도관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생겨난 것이 속회이다. 속회 제도가 처음 시작된 것은 1742년 브리스톨에서 였다. 웨슬레는 신도회를 보다 작은 단위의 소집단으로 나누고, 거기에 지도자 한 사람씩을 두어 신도들은 지도 감독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속회의 시작이다. 이 제도는 오늘날까지도 감리교회에 존속되고 있으며, 장로교회에서는 구역예배라 하여 이 제도를 본받고 있다.

또한 웨슬레는 전도자의 기본적인 성격과 신앙에 대해서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주장하였다. “"전도인은 가장 유익한 것은 성경과 독서이다. 꾸준한 노력으로 아침 시간을 독서에 투자하라. 24시
간 중에 적어도 5시간을 독서에 투자하라. 그렇게 못하겠거든 전도 사업을 그만두고 그대의 원 직업으로 돌아가라"고 할 정도였다.

감리교단이 점점 커지게 되자 국교파(성공회)의 비난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의 형 사무엘은 고향교회인 성앤드류 교회에서 쫒겨나게 되자, 할 수 없이 교회 마당에 있는 아버지의 무덤에서 설교를 하기도 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고 한다.

영국 국교도들로 부터의 위협은 점점 커져 갔다. 깡패로부터의 돌 세례를 받기도 하고, 잡혀 가서 고초를 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오히려 이들을 용서하고 회심에 이르도록 하였다. 이를 통해 변화 받은 사람이 죠지 클리프톤인데, 그는 일생 웨슬레를 따라 다니며, 웨슬레를 도왔다.

감리교도의 모임을 직접적으로 감독하게 것은 1753년부터였다. 그는 와이트 섬에서 시작하여,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등등 가는 곳마다 국교파의 위협을 당했지만 그는 더욱 충성스럽게 활동하였고, 드디어 1769년에는 미국 감리교단체를 만들게 된다. 이를 통해 그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꿈을 이루어 갔다. 그리고 1769년에 북아메리카에 감리교회를 창설하였는데, 그때 나이는 이미 70고령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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