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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감리교회의 창시자 존 웨슬레 John Wesley ③ 조회수 : 2566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4-06-17
회심 후 그는 영국의 옥스퍼드에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라는 설교로 전도 운동을 시작하였다. 이렇게 시작된 복음 전도운동은 순탄하지 못했다. 비웃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이들 대부분이 목사들이었다. 그들은 웨슬레에게 교회의 강단을 허락하지 않았다. "어떤 교회라도 웨슬레에게 문을 열어주면 안된다. 그가 발붙일 수 없도록 하라"고 했다.

그러나 복음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 갔다. 교회에서 설교 할 수가 없게 되자 그는 거리 설교를 시작하였다. 이로써 설교는 강단에서만 한다는 틀을 깨뜨렸고, 야외 설교에 박차를 가했다.

이후 웨슬레는 브리스톤에서의 전도 활동에 큰 두각을 나타내게 되었다. 야외 설교에 참여한 많은 신자들은 웨슬레의 설교를 듣고 울부짖기도 하고 소리를 지르는 이도 있었고 심한 경우에는 실신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영국교회는 웨슬레에게 교구 안에서 설교를 하지 못하도록 막았다. 교구란 한 교회가 맡은 전도 지역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웨슬레는 끝까지 믿음으로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의 명령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의무가 있다고 말하면서 “세계는 나의 교구다."라고 힘차게 역설하였다. 그의 말대로 웨슬레는 영국 전역을 순회하면서 복음의 소식을 전하였다.

물론 수많은 사람들의 이러한 웨슬레의 복음전도사역을 조소적인 태도를 가지고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일들은 모두 성령에 인도하심에 의해서 이루어 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웨슬레는 그 당시 영국 교회로부터 이단자라는 격렬한 말을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웨슬레는 끝까지 자기는 영국 교회에서 분열되어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였다. 또한 영국교계에서는 웨슬레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소책자들이 무수히 쏟아져 나왔지만 웨슬레의 복음 사역은 흔들림이 없었다.

웨슬레에게 있어서 어렸을 적부터 정신적인 지주가 되셨던 수잔나 웨슬레는 위대한 종교 운동가를 낳고 길러낸 일 이외에도 웨슬레와 함께 전도 사업에 자기 몸을 헌신하였다. 또한 가난한 살림살이와 수다한 자녀들로 더불어 파란 많은 생애를 살다가 1742년 7월 23일 73세의 일기로 영원한 안식의 나라로 떠났다.

웨슬레의 전도와 설교는 결코 간단하고 손쉽게만 진행되지는 아니하였다. 도중에 폭도들로부터 습격을 당하는가 하면 돌팔매질까지도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한 악랄하고 과격한 폭도들까지도 웨슬레의 기도와 설교를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나둘씩 하나님 앞으로 나오는 것이었다. 실로 이러한 일들은 웨슬레를 통한 성령의 역사가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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