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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감리교회의 창시자 존 웨슬레 John Wesley ② |
조회수 : 2635 |
작성자 : 현대교회 |
작성일 : 2004-05-30 |
옥스퍼드 대학에서 시작된 모임의 최초의 사업은 성경 연구였다. 이들은 일명 "신성클럽"이라는 별명을 얻게 되리만큼 신앙의 경건함을 중시하였다. 이들의 모임은 보통 다음과 같은 일을 했다. 첫째 희랍어 고전문학을 연구했고 성경 공부를 한 뒤 간단한 저녁 식사로 모임을 마치곤 했다.
“Holy Club(신성클럽)”의 첫 열매는 구제운동이었다. 옥에 갇힌 사람, 빚진 자, 병자들, 그리고 그밖에 여러 가지 봉사 사업에 노력하였다. 이 작은 단체는 비록 해산되어 그 존재는 사라졌으나 웨슬레 형제와 휫필드의 신앙과 생활은 옥스퍼드대학을 깨우쳤고, 그 다음에는 영국 전역에 믿음의 불을 일으켰고, 나중에는 바다를 건너 북미 대륙과 전 세계에 거룩한 불꽃이 일어나게 하였다.
1735년 10월 18일 1735년 4월 25일 웨슬레의 부친인 사무엘은 72세의 일기로 일생을 마쳤다. 사무엘이 죽은 이후 엡윗교회의 목사직을 웨슬레가 맞았으나 끝까지 하지 못하고 더욱더 큰 꿈을 안고 미국으로 떠났다. 이때부터 그의 해외 선교가 시작된 것이다.
첫 번째 그의 해외 선교는 처음에는 좋았으나 착수한 지 만 2년이 좀 지났을 무렵 그에게는 불행한 연애 사건이 생기어 이 사건과 함께 1735년 12월 2일에 귀국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웨슬레의 조지아 선교는 실패로 끝난 것이다. 하지만 조지아 선교의 일이 그에게 있어서는 커다란 경험이었다.
그의 조지아 선교는 또한 여러 면에 있어서 많은 유익을 끼쳤으니 뒤에 오는 선교사들에게 겸비한 마음과 굳건한 의지를 가질 수 있게 한 점이라든지, 휫필드로 하여금 아메리카 대륙에 건너가 일할 수 있는 충동을 준 것은 웨슬레 선교가 끼친 공헌이다.
그 후 웨슬레에게 놀라운 변화의 사건이 일어났다. “1738년 5월 24일. 그 날 저녁에 나는 마지못해 올더스케이트의 거리에서 모이는 집회에 나갔더니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 서문을 읽어 내려가고 있었다. 9시 15분전쯤 그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속에 일으키시는 변화를 설명하고 있을 때 나는 내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 나는 구원을 위해 오직 그리스도 한 분만을 의지해야 한다고 느꼈으며, 그가 나의 구원을 위해 죄를 없게 하시고 죄와 죽음의 법에서 구하여 주셨다는 확실한 증거를 받았다.”
이상은 웨슬레가 올더스게이트에서 체험한 것을 기록한 일기이다. 요한 웨슬레가 이날 경험한 성령의 체험과 구원에 대한 깨달음은 신앙과 생활은 물론 그의 사상의 분기점이 되었다. 그는 비로소 행함으로 앋는 구원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구원에 대해 눈을 떴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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