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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알버트 슈바이처 Schweitzer, Albert |
조회수 : 2850 |
작성자 : 현대교회 |
작성일 : 2004-02-15 |
독일계의 프랑스 의사, 사상가, 신학자, 음악가인 슈바이처는 스트라스부르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에는 목사와 대학 강사로, 그리고 어려서부터 천부적 재질을 보인 파이프오르간 연주가로 활약하였다. 그 사이에 <음악가·시인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예수>등의 책을 발표하였다.
아프리카의 흑인들이 의사가 없어 고통을 당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모교 의학부의 청강생이 되어 의학을 공부한 후, 좋은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 안락한 생활을 뒤로하고, 1913년에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현재의 가봉 공화국)로 건너가 오고웨 강변의 랑바레네에 자력으로 병원을 개설하였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독일인이라 하여 포로의 몸으로 본국에 송환되고 그의 병원도 폐쇄되었으나 아프리카 생활의 회고록인 <물과 원시림 사이에서>의 출판을 계기로 그의 인간과 사업이 점차 세인의 주목을 끌기에 이르렀다. 이에 힘을 얻어 다시 랑바레네로 가서 병원을 재개하여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큰 병원을 이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도 유럽으로 돌아가지 않고 전도와 진료에 전념하였는 등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이런 공로로 1928년에는 괴테상을 수상하고, 1951에 아카데미프랑세즈 회원이 되었으며, 1952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하였는데, 그는 노벨상의 상금으로 나환자촌을 세웠다.
사람들이 수상식에 참여할 것은 권유하자 그는 “할 일 많은 병원 일을 두고 훈장 따위나 받으려고 갈 시간이 어디 있는가?”하며 끝내 수상식에 참여하지 않았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그의 병원을 찾아와서 “당신과 같은 사람이 이렇게 고생하면서 살아야 합니까?”라고 말하자, 그는 “나를 동정하는 눈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손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아십니까?”라고 하였다.
60년에 프랑스령 적도아프리카가 독립하여 가봉 공화국이 되었으나 흑인들의 그에 대한 경외의 마음은 변함이 없어, 새로 창설된 적도성십자훈장으로 감사의 뜻을 표하였다. 그는 90세가 지나면서부터 건강이 급격히 나빠져서 65년 9월 4일 전 세계인의 애도 속에 죽었다.
그는 신학자로서는 종말론적 요소를 강조하였고, 철학가로서는 칸트를 연구하였으며, 독자의 윤리관인 ‘생명의 경외’를 주장하였다.
음악가로서는 뛰어난 오르간 연주가였을 뿐만 아니라 오르간 개량에 있어서도 큰 업적을 남겼다. <독일과 프랑스의 오르간 제작법과 오르간 음악>을 발표하고 과도한 풍압으로 인하여, 음색이 손상되던 폐해를 제거하는 등 근대 오르간의 간소화를 꾀하였고, 바흐 연구가로서도 손꼽히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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