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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충청북도 지역 여성교육의 초석, 메리 리 로간 선교사 조회수 : 3271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7-07-14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충청북도 지역 여성교육의 초석, 메리 리 로간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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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리 로간(Logan, Mary Lee)은 1856년 9월 17일 미국 켄터키 주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성장하여 J. V. 로간의 부인이 되었으며, 남편은 켄터키 센트럴대학의 학장으로 재직한바 있다. 이때 그들은 같은 대학에서 기독청년회(YMCA)와 여자기독청년회(YWCA)를 육성하였고, 사회봉사 활동에도 힘을 썼다. 1908년 남편과 사별한 뒤 한국에 협력선교사로 자원하여 1909년 3월 5일 53세의 늦은 나이에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내한하였다. 이 무렵 선교사들은 대부분 정규선교사로 임명되어 재정 지원을 받고 활동하였다.

1884년 내한한 알렌부터 1962년 내한한 포(Poe) 선교사에 이르기까지 386명의 선교사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러나 로간 선교사의 경우 해외선교부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지 않고 모든 경비를 스스로 부담하며 활동한 한국 최초의 자비량 선교사였다.

그는 한국에서 별세할 때까지 10여 년 동안 주일학교, 성경학교, 주일학교 교사반, 여성 전도반, 여성지도자반 등을 육성하면서 충북지역의 선교와 여성교육에 커다란 공을 세운 여성 선교사였다. 자기 집에서도 매주 15시간 씩 여러 성경 공부 반을 인도했으며, 여기에 참여한 여성들은 5-60여명에 이른다. 이 무렵 그가 살던 청주시 상당구 탑동 185-1번지에 있는 집은 현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33-5호로 지정되어 ‘로위(Lowe)기념관’으로 보존 관리되고 있다.

그는 한국말도 잘 구사하고 충북과 청주를 사랑했으며, 청주지역 여성교육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며, 여성의 근대화 의식 형성에 크게 기여했다. 신병으로 1919년 12월 7일 서울에서 별세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한편 1921년 6월 청주에서는 그를 추모하여 청주제일교회에 화강석으로 기념비를 세웠는데, 다음과 같이 기록하여 건립하였다.

이 기념비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에 대하여 <충북기독교100년사>는 이렇게 평가하였다. 첫째, 충북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한글 비석이라는 관점에서 역사적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 둘째, 한문을 많이 사용하던 시절에 봉승(奉承) 진출갈력(盡忠竭力) 등 한문 용어까지도 한글로 기록하여, 일제 강점기에도 교회가 앞장서 우리글과 말을 지키려 노력하였다. 기독교와 한글운동-민족운동의 상관관계를 나타내는 귀중한 사료이다. 셋째, 이 비석은 여전도회 중심으로 건립되었고, 여성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배려하여 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 향상에 노력한 흔적을 보여준다. 1920년 청주제일교회에서 남·여석을 구분했던 휘장을 제거한 것도 이와 연관이 있다.

로간 선교사는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하며 충북지역 여성교육에 헌신적인 삶을 살다가 순직하여 양화진에 외롭게 묻혔다. 앞으로 그의 위대한 선교정신과 삶을 뒤돌아보며 기억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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