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사람들
•홈  >  쉴만한물가  >  믿음의사람들

목록보기

  제  목 : 양화진과 절두산, 선교사 묘지의 역사에 대하여 ③ 조회수 : 3121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06-18
헤론 선교사의 유족과 선교사들은 조정에 서울 가까이 묘지로 쓸만한 장소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조정에서 지정해 준 곳은 한강 건너편 야산 기슭 모래밭이어서 묘지로 쓸 수 없는 땅이었다.
그래서 선교사들은 하는 수없이 시신을 밀봉하여 헤론이 살던 집 뒤뜰에 매장하려 하였으나 선교사를 보조하는 사역자들이 한사코 반대하여 더욱더 문제가 생겼다.

이와 같은 경위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헤론의 죽음으로 인해 외국인 묘지를 선정하는 문제가 생겼다. 묘지로 적당한 부지를 사용하는데 대한 정부의 동의를 얻어내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뒤따랐다. 조약에 따르면, 한국 정부는 묘지 부지를 제공해야만 했다. 관리들은 연이어 추천했지만, 바람직한 부지의 구입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마침내 헤론 의사의 시신을 선교회 구내(Mission compound)에 매장하자는 제안이 들어 왔다. 그러나 4대문 안에 시신을 매장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는 강한 미신 때문에 겁을 낸 우리의 한국인 교사와 조사(助事)들이 완강하게 반대하였다. 그들은 도성안에 시신을 매장을 하게 되면 성난 사람들이 자기들을 죽이고, 우리 집(언더우드의 집)을 불 질러 버릴 것이라고 강하게 애원했기 때문에 우리는 자연히 망설이게 되었다. 이 무렵 우리의 처지를 알게 된 정부는 미국 공사, 그리고 알렌과 2~3일 동안 심사숙고한 끝에 타협이 되어 서울에서 약 8km 즘 떨어진 강 언덕에 적당한 장소(양화진)를 지정해 주었다."(릴리아스 언더우드의 글)

드디어 미국공사관과 조정의 신임을 받고 있던 알렌과 언더우드 선교사 등이 어려운 교섭 끝에 경관이 아름다운 양화진 언덕을 묘지로 사용하도록 허가를(1893.10.24) 받았고, 이곳에 헤론선교사를 매장함으로서 오늘의 양화진 외국인 묘지공원이 터를 잡게 된 것이다.
2004년 8월 현재 양화진의 선교사 묘지공원에는 미국인 2백30명, 영국인 30명, 프랑스인 25명, 덴마크인 3명, 호주인 12명, 벨기에인 4명, 백러시아인 54명, 캐나다인 7명, 일본 인 1명, 스페인인 4명, 한국인 17명이 묻혀 있다. 이처럼 이곳 양화진에는 국적은 다르지만 한마음으로 주님을 위해서 일하다 하늘나라로 가신 분들이 모여 있는 것이다.

그 깜깜했던 100년 전, 배를 타고 몇 개월씩 고생을 해야 동서양이 간신히 이어지던 시절에 나라를 등지고 고향을 버리고 가족과 헤어져 미개하고 몰이해로 가득한 땅에 들어왔던 선교사들과 전도자들. 그 분들은 정말 성령을 힘입은 사람들이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한 분들이었다. 그리고 한국을 사랑하여 한국 땅에 묻힌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그래서 이 칼럼을 통해서 양화진에 뼈를 묻은 선교사를,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을 소개하려 한다.

 "

  이전글 : 양화진과 절두산, 선교사 묘지의 역사에 대하여 ②
  다음글 : 양화진에 묻힌 최초의 선교사, 존 헬론 ①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