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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대각성 운동의 선구자, 죠지 휫필드 ② 조회수 : 2923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04-23
대각성 운동의 선구자, 죠지 휫필드 George Whitefield ②

죠지 휫필드는 자신에게는 거듭 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거듭나는지 몰랐다. 그는 금식하고, 자기 돈을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고, 허름한 옷과 신발을 신고 밤새 땀을 흘리며 기도를 하고 친구들과의 교제도 그만두었다.

그 결과 그는 학업을 포기해야 했고, 퇴학의 위기를 맞게 되었으며, 친구들은 그를 비난했다. 그는 겨울에도 밖에서 기도하다 손이 까맣게 얼기도 했다. 마침내 그는 앓아눕게 되었으며, 7주 동안이나 침대에 누워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그는 열심히 기도했고, 자기의 이성과 열심을 버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의 음성 듣기를 간절히 원했다.

어느 날 그는 침대 위에 쓰러져서 울부짖었다. "하나님, 저는 지금 갈급합니다." 그것은 그가 처음으로 자신의 무력함을 하나님께 아뢴 것이었다. 그때 가슴 속에서 뜨거운 감동과 더불어 음성이 들려 왔다. “죠지야, 나는 너를 사랑한다. 투쟁을 멈추고 단순히 믿기만 하여라. 너는 거듭났느니라." 그는 그렇게 단순한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라니! 그는 것이 구원의 확신을 갖는다는 것이 너무 다 간단해서 웃어 버렸다.

그 후에도 그는 9개월 동안이나 집에서 요양을 해야만 했다. 이때부터 그의 가슴은 복음을 나누어 주고자 하는 열정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글로스터의 집에 머물러 요양하는 동안 교회로부터 목사가 될 것을 권유를 받았다. 그러나 그는 교만할까 두려워 옥스포드로 돌아갈 돈이 생기면 그러겠노라 서원을 하였다. 그 기도는 즉시 이루어졌고, 옥스포드로 돌아와 학업을 마친 후 서원한 대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가 재학을 하고 있는 동안에도 여러 교회를 순회하며 설교를 하였다. 이때부터 그가 주도하는 영적부흥운동의 불길이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그의 부흥운동은 고향인 글로스터에서 불타오르기 시작하였는데, 교회 안팎은 그의 설교를 들으려는 사람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이때 그는 런던교회의 초청을 받았다. 그는 평안한 목회자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미국 식민지로 가서 복음을 전하며 선교사로 살 것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러나 요한 웨슬리의 "목자 없는 양들이 우리를 기다린다."는 편지를 받은 후 미국 조지아로 떠날 것을 결심하였다.

그러나 다음 배의 출항지까지는 일년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고향 글로스터에서 주2회 설교를 했는데, 그때마다 수 천 명이 모였다. 아침 7시부터 자정까지 기도하며, 상담을 했다. 한편으로 조지아의 고아들을 위한 자선기금을 모았다. 그가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하자, 교회에서는 열정주의자라고 박해를 하였다. 그러던 중 웨슬리가 돌아왔고, 그는 웨슬리에게 야외설교를 하도록 설득한 후 미국 조지아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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