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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한국 초대교회 성장의 원인 |
조회수 : 2983 |
작성자 : 현대교회 |
작성일 : 2003-03-22 |
선교 초기의 지지부진하던 한국교회가 1895년부터 1907년에 걸쳐서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놀랄만한 성장을 한 원인은 다음과 같다.
첫째, 청일전쟁과 노일전쟁 같은 참혹한 전쟁과 그 피해가 서북지방에 집중되어 있었다. 당시 평양에 와있던 사무엘 마펫과 그레엄 리 목사의 증언에 의하면 청일전쟁 이후 평양은 폐허로 변하였고, 설상가상으로 전염병이 창궐하였다고 한다. 이 때 선교사들은 거리를 돌아다니며 희생적으로 봉사했고, 그로 말미암아 주민들로부터 뜨거운 사랑과 존경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뜨거운 사랑과 관심을 받아본 적이 없는 이 지역의 사람들은 감동했고, 이것이 빠르게 복음 전파될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이다.
둘째, 당시 기독교는 힘있는 서구의 종교였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일제로부터 보호받고, 힘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신앙을 갖게 되었다. 당시 일본에 의해 작성된 문사를 보면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이 일본에 병합되지 않으려면 힘있는 기독교에 입교해야 한다”고 선동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셋째, 선교학자인 라투레트 교수는 이 기간동안 한국인들이 경험한 비극적인 현실로 인한 정서적인 충격이 교회의 급증을 가져오게 되었다고 지적하였다. 다시 말하면 한국의 국가적 불안정에 대한 해답을 기독교를 통하여 찾고자 노력하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일본과의 합병의 기운이 성숙해 질수록 서양의 제도를 따라 나라를 재조직하고 민심을 결속하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나타났고, 이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교회를 찾아 들어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넷째, 이 시기에 교회가 급성장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당시의 종교적 공황상태 때문이라는 것이다. 전통적인 종교인 불교와 유교는 타락하였을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지고 나갈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이 주는 안정감과 미래지향적인 신앙이 사람들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교회를 향하여 발걸음을 옮겨 놓도록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하면 메시야적인 구원의 갈망과 유토피아를 향한 소망이 사람들의 마음속에 작용한 것이다.
그래서 양주삼의 「조선 기독교회사」를 보면 “혼란스런 정치적 상황으로 안정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끊임없이 교회로 들어왔다”고 증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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