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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친 전도자 , 요한 웨슬레 |
조회수 : 3181 |
작성자 : 현대교회 |
작성일 : 2005-11-06 |
"세계는 나의 교구"라고 외친 전도자 , 요한 웨슬레 John Wesely ④
1753년, 웨슬리는 직접 세계선교에 뛰어들기 시작하였다. 맨 먼저 와이트 섬으로 가서 전도운동을 벌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어서 만섬과 실리에 전도하였다. 다음으로 아일랜드에 갔다. 국교파 신자들이 모조리 나서서 방해를 하기도 하였지만 그의 설교는 아일랜드 전체를 복음의 물결로 뒤 덥게 하였다.
무뚝뚝한 스코틀랜드인들도 웨슬리의 설교를 사랑하게 되었다. 글래스고우와 애버딘, 그리고 더딘을 이어 웨슬리는 계속하여 웨일즈, 카아디프 그리고 리메리크까지 널리 복음을 전하였다.
그 후 웨슬리는 치밀한 계획 가운데 미국 복음사역을 계획하였다. 이를 통하여 1769년 미국에 세 개의 감리교 단체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그 안에 5명의 설교자가 활동하였다.
요한 웨슬리는 외소하였지만 그의 작은 몸 안에는 세계를 흔드는 힘이 들어있었다. 그는 전도하기 위하여 50년 동안 말을 타고서 지구 10바퀴 이상 되는 거리를 돌아다녔으며, 2백 권이 넘는 책을 펴냈다.
50이 넘은 나이에도 하루 평균 32km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 60년 동안 한번도 걸러 본 적이 없이 새벽 4시면 일어나 기도하고 설교하였으며, 동생 찰스 웨슬리와 만든 수많은 찬송가 중에 좋은 것만 뽑아 1778년에는 525곡의 찬송가를 만들기도 하였다.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성경이 만든 사람"이라고 하였다. 정말 요한 웨슬리는 성경밖에 모르는 사람이었다. 80세가 되었을 무렵 그가 전도하며 다닌 곳마다 교회가 세워지기 시작하였다. 그의 나이 86세가 되었을 때에는 자신을 심하게 핍박했던 아일랜드 콘웰에서 2만5천명이 넘는 사람들 앞에서 설교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자신에게 남은 한순간 한순간을 쓸모없이 살아가지 않고자 시간을 아껴서 복음전파에 힘을 기울였다. 그가 쇠약하여 죽기 5일전까지도 그는 32km 떨어진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할 정도였다. 그가 89세의 나이로 죽을 때 두 개의 숟가락과 찻주전자 하나, 그리고 다 낡아빠진 코트 한 벌밖에 없을 정도로 자기의 모든 것을 다 나누어 주었다.
그의 임종을 안타까워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고 웨슬리는 평안한 가운데 멀고 먼 인생의 길을 다 마치고 천국의 영광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웨슬리가 이 땅을 떠날 당시, 영국에는 294명의 설교자와 71,668명의 회원이 있었으며, 선교부에는 19명의 선교사와 5,300명의 회원이 있었고 미국에는 198명의 설교자와 43,265명의 회원을 가질 만큼 큰 열매를 맺었다.
웨슬리의 삶은 주님께 대한 열정과 믿음으로 가득한 생애였다. 이를 통하여 수많은 열매를 맺게 되었다. 우리도 주님을 위한 열정적인 믿음으로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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