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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중국선교의 선구자, 허드슨 테일러 ⑦ |
조회수 : 2697 |
작성자 : 현대교회 |
작성일 : 2005-06-19 |
중국선교의 선구자, 허드슨 테일러 ⑦ Hudson Taylor
이 후 내륙선교의 핵심기지가 된 영파지방으로 옮겨온 허드슨은 파커박사를 동역자로 얻었다. 그러나 이때 외국인 학살 계획이 세워져 생명을 잃을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끊임없는 전쟁으로 생긴 난민들을 돕기 위해서 무료 급식소를 열었으며, 교회를 맡아 시무하였고, 병든 자들을 치료하였다. 주님과 복음을 위한 그의 헌신적인 사역의 결과로 많은 현지인 동역자를 얻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예기치 않게 지방의 병원을 맡아야 했는데, 그들은 3년 동안 헌신적으로 일했다. 그러나 그것은 테일러의 능력을 넘어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의학을 공부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중국에서의 사역을 중단하고 떠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테일러는 몇 가지 이유로 중국을 떠나게 되었다.
1860년 테일러 부부는 장기 휴가를 받아 영국에 도착하였는데 이 휴가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었다. 우선 허드슨과 마리아는 모두 결핵 등으로 건강이 좋지 않아 이 기회에 휴식을 취하고 병도 치료할 수 있었다.
또 교육을 더 받을 기회도 되었다. 테일러는 런던 병원에 들어가 응용화학 과정과 산부인과 과정을 마치고 왕립 외과 대학의 회원 자격을 획득하였다.
또한 번역 사역도 하였다. 그는 영국에 중국인 조수를 데리고 갔었는데 그와 다른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중국어 신약전서의 개역판을 만들었다. 그는 이 어려운 일을 하루에 13시간 이상씩 일하면서 완성하였다. 그 결과 닝포 개역판 신약성경이 빛을 보게 되었고, 수많은 중국인들을 생명의 주님께로 인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휴가 기간 중 그들이 가장 중요한 사역은 선교회를 조직한 것이었다. 그래서 중국내지선교회가 탄생한 것이다. 테일러는 중국 여러 곳을 여행하며 일하면 일할수록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복음 전파의 필요성을 더욱 느끼게 되어 강한 의무감에 사로잡혔다. "수억의 사람들이 복음을 모른 채 죽어가고 있다 매시간 1000명이 죽음의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중국 전역을 복음화하는 것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 같이 보였으나, 테일러는 한 가지 전략을 세웠다. "만약에 1000명의 복음 전파자를 확보한다면, 그리고 이들 각 사람이 매일 50명 내지 200명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다면 3년 이내에 모든 중국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것은 현실적인 계획이 아니었고, 또 실제로 그렇게 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내지 선교회는 중국의 모든 성에 선교사를 파송하였고, 선교회가 설립된 지 30년이 경과된 1895년에는 640명 이상의 선교사들이 중국을 위해 자신들의 삶을 헌신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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