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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글래드스턴 Gladstone, William Ewart |
조회수 : 2535 |
작성자 : 현대교회 |
작성일 : 2004-03-07 |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를 주름잡았던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 윌리엄 에워트 글래드스턴 이다. 그는 네 번이다 영국 총리를 지낸 자유당의 원로이자 학자, 재정가, 신학자, 웅변가, 인도주의자였다.
그는 당대를 살았던 보수당의 거두 벤자민 디즈레일리와 쌍벽을 이루면서 대영제국의 영광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한번은 디즈레일리 씨에게 불행과 재난을 구별해 달라는 요청을 받자, 그는 "글래드스턴 씨가 템스강에 빠진다면 그건 불행이지요. 하지만 누가 그를 건져준다면 그것은 재난일 것입니다."라고 대꾸할 정도로 두 사람은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결한 인물이기도 하다.
글래드스턴은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특유의 절약정신이 몸에 완전히 배어 있는 인물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엄청난 일을 처리할 정도로 치열하게 살다간 인물인데, 15살부터 글을 쓰기 시작하여 85살에 백내장으로 눈이 먼 뒤에야 비로소 일기 쓰기를 중단했다고 한다.
목사가 되고 싶어 했을 정도로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그는 어릴 때부터 주님을 자기 인생의 목표로 삼았으며 자신이 정치가가 된 것도 결국은 그리스도를 위해서였다고 말하곤 하였다.
그는 주일에는 반드시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나갔다. 한번은 대학교회에서 영국교회에 대해서 낙관적인 강연을 한 적이 있었다. 강연이 나자 한 학생이 물었다. “미래에 대한 근심이나 부정적인 조짐은 없습니까?” 그러자 그는 말하기를 “예, 저에게는 걱정이 하나 있기는 한데 그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하나님이 떠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이런 일화가 있다. 어느 날 다우닝 가 10번지에서 노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한 소년이 자기 형이 죽어가고 있으니 제발 그에게 천국의 길을 보여 달라는 것이었다. 의회에서 연설할 연설문을 작성하는 일로 바빴던 그는 자신의 중요한 일을 접어두고 그 소년을 따라갔다. 결국 그 소년의 형은 예수를 영접하였다. 자기 집으로 돌아온 글래드스턴은 연설의 마지막 부분에 이렇게 썼다. “나는 오늘 영국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는 자주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나에게 영제국의 수상의 자리보다 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주님 앞에 나가서 예배를 드리는 자리입니다.” “이 땅을 살면서 내가 결코 버릴 수 없는 것은 오직 주님께서 내게 주신 믿음뿐입니다.”
1833년 하원의원이 되어 상무장관 식민지장관 재무장관 등을 역임한 그는 자유주의자로 명성을 떨쳤고, J.러셀이 은퇴한 후 자유당의 지도자가 되었으며, 1868년 총리에 취임한 후에는 아일랜드 교회의 국교를 폐지하고, 국민교육법을 성립시키는 한편 선거의 무기명 투표제를 제정하는 등 잇달아 개혁을 추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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