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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충청북도 최초의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 전한 F.S. |
조회수 : 3303 |
작성자 : 현대교회 |
작성일 : 2007-07-24 |
조선 땅에 뼈를 묻은 사람들
충청북도 최초의 교회를 설립하고, 복음을 전한 F.S.밀러 선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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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화진에는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1904년에 내한하여 1941년까지 37년간 남, 북한에서 사역한 블레어 선교사 딸의 묘비가 있다. 1910년 한국에서 출생하고 1919년 8월 2일 서울에서 사망하여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또 다른 딸은 1914년 사망하여 평양에 묻혔다.
블레어는 1879년 미국에서 출생하였고, 1904년부터 평안북도 선천에서 활동하였으며, 특히 선천 선교부에서 성경학교를 통하여 교회 부흥운동을 일으키는데 이바지하였다. 1907년에는 자성군 삼흥면에 상서평교회를 설립하였으며, 교인들이 더욱 증가하여 하서평교회도 설립하였다.
1908년 강계선교부가 개설되면서 강계 북부지역에 복음을 전했으며, 강계군 동면 내고동으로 이주하여 부인과 세 딸이 함께 생활하였다. 강계선교부 주석으로 이 지역 교회를 총괄하고, 만주지방에 있는 조선인 교회를 감독하였으며, 학교 교사, 각 교회에 봉직하는 조사 및 성서판매원으로 복음을 전했다.
그 결과 1908년 자성군 건포교회를 설립하고, 그 후 선교구역을 위원군 지역까지 확장하여 1909년 위원군 한장교회와 1910년 신흥교회를 설립하는데 기여하였고, 1911년에는 석포교회 예배당을 건립하여 시무했다. 그의 부인 질레트는 1905년 10월 21일 내한하여 1907년부터 미국 북장로회 선교사로 합류하여 남편과 함께 선천, 강계, 대구선교부에서 봉직했다.
블레어 선교사는 1913년 북한에서 대구선교부로 전임되어, 1915년까지 3년간 대구 서부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면서 경상북도 서북부 지역을 순회하며 겸임 선교사로 폭 넓게 활동하였다. 브루엔 선교사와 연계하여 선산군에서 8개 교회, 상주군에서 7개 교회, 칠곡군에서 6개 교회, 군위군에서 5개 교회, 의성군에서 3개 교회, 김천군에서 2개 교회 등을 겸임하여 시무하였고, 1916년 아담스, 윈 선교사와 연계하며 군위군 2개 교회와 영천군 2개 교회 등을 확대하여 시무하였으며, 산하 11개 교회의 성서판매인을 감독했고, 칠곡군의 신동교회와 영천군의 당지교회를 설립하였다.
1920년에 부인의 신병 때문에 일시 미국으로 귀국하였다가 1921년 다시 내한하여 선산의 원동, 구미, 용사동교회와 상주군의 수상교회를 설립하였다. 그 후 두 번에 걸쳐 노회장을 역임하면서 경북지역의 교세를 크게 확장하였다.
1941년까지 대구·경북지역에서 활동하다가 일제의 강압으로 1941년 한국을 떠나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활동하였다. 그의 자녀들은 성장하여 큰 딸은 목사 부인으로, 둘째 딸과 넷째 딸은 선교사로 활동했다. 그는 1945년 영양실조로 병을 얻어 필리핀에서 별세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가 살던 주택은 대구시 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어 계명대학교 ‘교육·역사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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