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콩 하나로 3백 가지가 넘는 발명품을 만들어 낸 미국의 농화학자이자 실험가인 카버는 찌그러진 냄비, 버려진 유리병을 실험도구 삼아 쓰는 등 자신을 위해서는 지독하게 돈을 쓰지 않은 구두쇠였지만, 다른 사람을 위해서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는 희생적인 과학자였다.

남북전쟁 초에 흑인노예의 아들로 태어나 열 살 무렵 농장을 떠나 노동자, 호텔요리사, 세탁부 등으로 어렵게 생계를 꾸려 가면서도 학문에 대한 꿈을 접지 않은 그는 이십대 후반 마침내 고등학교과정을 마쳤다. 이후 아이오와 주립 농과대학에서 농학사와 이학석사 학위를 받은 뒤 앨라배마 주의 터스키기 학교에 일생 동안 적을 두고 남부 농업에 도움을 줄 연구에 매달렸다.

교육을 통해 흑인의 최대 이익을 이루고자 노력했던 카버는 목화 재배로 척박해질 대로 척박해진 수백만 에이커의 땅을 개량하고 거기에 심을 수 있는 새로운 품종의 작물을 찾아냈다.

또 오랜 연구 끝에 땅콩에서 치즈, 우유, 잉크, 약용기름 등 3백여 개, 고구마에서 밀가루, 당밀, 고무 등 백여 개에 이르는 가공식품과 공업생산품을 개발해 냈다. 그 결과 농작물로 인정받지 못하던 땅콩은 미국 전역에서 여섯 가지 주요 농작물 가운데 하나로 재배되기 시작하였다. 그는 자신의 발명품에 대한 특허권을 주장하지 않아 사람들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했고, "돈을 더 많이 가지게 되면, 동족을 잊어버릴지도 모른다."면서 좋은 조건의 스카웃 제의도 거절했다.

땅콩 박사로 명성이 높아져 갔지만, 자질구레한 문제를 묻는 편지 한 통에도 소홀함이 없었던 그에게 어느 날 심한 병에 걸린 땅콩 한 봉지가 도착했다.

땅콩이 병에 걸린 원인과 치료법을 알려 주면 달마다 1백 달러씩 보내 주겠다는 것이었다. 연구 끝에 병의 원인을 알아낸 카버 박사는 수표를 되돌려 보내며 이 같은 편지를 동봉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땅에 인간들이 땅콩을 키우는 것에 대해 아무 보답도 바라지 않으셨는데, 병의 원인을 알아냈다고 제가 어찌 대가를 바라겠습니까?

1940년 초 그는 검소한 생활을 통해 저축한 돈 3만 3천 달러를 학
교에 기중하며 유익하게 써 줄 것을 당부했는데, 그가 생을 마감한 뒤 미국에는 그의 이름을 딴 <카버 학교>가 열여덟 개나 생겨났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카버에게 루스벨트 메달을 수여하며 그의 일생을 이렇게 요약했다. "카버는 평생 하나님의 진리를 탐구한 겸손한 과학자로, 흑인뿐 아니라 백인의 진정한 해방을 위하여 일생을 바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