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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① 조회수 : 3078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06-18
최초의 감리교 선교사 아펜젤러. Henry G. Appenzeller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는 1858년 미국 펜실베니아주 서더튼에서 메노파교도의 가정에서 태어나 철저한 성서교육을 받고 성장하였다. 1876년 10월 6일 웨스터체스트의 장로교회에서 봉사하던 풀턴의 설교를 듣고 회심했고, 1879년 4월 20일에 좀더 활동적인 신앙생활을 위해 감리교회로 교적을 옮겼다.

1878년 프랭클린 마샬대학을 졸업하고 드루신학교에서 수학하였으며, 1881년경부터 인도선교의 비전을 갖고 있던 중 파울러 감독의 요청으로 선교지를 한국으로 정하여 1885년 2월 1일 스크랜튼, 언더우드와 더불어 부산으로 출발하여 4월 5일 부활주일에 제물포 항구를 통하여 입국하였다.

이때의 감격을 아펜젤러는 다음과 같이 나타냈다. 우리는 부활절에 이 곳에 도착했습니다. 이 날 사망의 빗장을 산산이 깨뜨리시고 부활하신 주께서 이 나라 백성들이 얽매여 있는 굴레를 끊으사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누리는 빛과 자유를 허락해 주옵소서.(1885년 4월 9일 제물포에서 쓴 편지)

그러나 당시 국내의 정황은 매우 불안했다. 1884년 12월 4일에 일어난 갑신정변의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아펜젤러 부인이 임신한 상태였기 때문에 이들 부부는 부득이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7월 29일에야 다시 서울에 들어올 수 있었다.

그 후 아펜젤러는 성서번역에 힘썼으며(마태복음, 마가복음, 고린도전후서), 감리교 인쇄 출판소를 확장하여 각종 선교잡지를 발행하기도 했다. 1885년 8월 3일 배재학당을 설립하여 교육을 통한 선교에 힘쓰는 한편 1895년 정동교회를 설립하였다. 정동교회에서는 서재필, 이승만, 윤치호, 주시경, 이상재, 남궁억 등이 중심이 되어 독립협회 지회가 결성되었는데 만민공동회를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수구파의 모략으로 독립협회는 해체되고 중요한 인물들이 투옥되었다. 그는 감옥을 순례하며 구호와 전도활동을 하였는데 이때 이승만, 이상재 등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는 서울, 평야, 인천, 수원, 공주, 대구, 전주 등지로 여행하며 전도활동을 수행하였다. 한국에서의 아펜젤러의 사역은 그의 사역기간 5년 동안 체중이 180파운드에서 131파운드로 줄어들었을 정도로 정열적인 것이었다.

1902년 6월11일 목포에서 열리는 성서번역출판위원회에 참석차 인천에서 목포로 가던 중 짙은 안개로 아펜젤러가 탄 배와 다른 배가 충돌하여 침몰하는 사고가 일어났다. 이때 아펜젤러는 함께 승선했던 정신여학교 학생을 구하려다가 결국 순교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는 그토록 사랑하던 조선 땅에 묻혔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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