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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대각성 운동의 선구자, 죠지 휫필드 ① 조회수 : 2998
  작성자 : 현대교회 작성일 : 2006-04-09
대각성 운동의 선구자, 죠지 휫필드 George Whitefield ①

죠지 휫필드는 22살이 되던 1736년에서 1770년까지 30여 년 간을 열정적인 선교자로서 살았다. 그는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버뮤다와 미국 식민지에서 설교하였다.

1730, 40년대 영국은 정치가들은 부패했고, 교회의 설교는 냉랭하였다. 사람들은 술에 취해 난폭한 짐승이 되어 버렸고, 거리에서 방황하는 아이들도 많이 생기고, 도박이 성행했으며, 연극은 외설적이었다.

이때 진정한 기독교인들은 영적인 교제모임을 만들었는데, 런던에 100여개, 그 외의 지역에도 100여개의 모임이 만들어 져서 대각성 운동의 요람역할을 하였다.

대학 2년인 22살 때 휫필드는 열정적아나 설교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가 트럼펫 같고, 설교하는 모습이 사자가 울부짖는 것 같다고 하였다. 그는 곧 요한 웨슬레의 형제들과 동역하여 영국의 영적인 대각성 운동을 일으켰고, 이것은 사회를 변화시켰다.

교회가 생명력 있게 되었고, 문학과 철학에 새로워지고 교육이 확대되었다. 죠지는 영적인 심포지움을 통해 젊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영적 부흥운동을 일으켜 주시길 기도하였다.

그의 어린시절은 불행했다.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는 웅변에 재능이 있었고, 16세에는 라틴어와 실제 그리스어 성경을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유능했지만, 8세에 맞이 한 새 아버지의 노름으로 가정이 어려워지자 죠지는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1년 반 동안 어머니를 도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을 만나며 실제의 삶을 경험하였다. 대학가기를 소망하던 그는 17세에 근로 장학생으로서 옥스포드에 입학하였다. 이때는 죠나단 에드워드를 중심으로 미국 메사츠세츠에서 대각성 운동이 일어나기 2년 전이었다.

죠지 휫필드는 몇몇 귀족 자제들을 위한 가정부를 하면서 공부를 하였는데, 이때 그는 옷 빨고 신발 닦고 숙제를 해 주어야 했고, 가정부라는 표시로 지정된 유니폼을 입어야만 했다.

죠지 휫필드는 Holy Club 멤버들처럼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려 했기에 주위에서 감리교인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하였다. 당시 옥스퍼드 귀족출신인 요한 웨슬레와 챨스 웨슬레가 이끄는 Holy Club에 가입하여 경건한 생활을 하였다.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 기도를 하고, 일용할 양식을 먹고, 회개 소감을 썼다. 주일은 성찬식을 기념하고, 수요일과 금요일은 금식을 하였다. 또한 죄수나 병자들을 방문하였으며, 그들의 자녀들을 위해 기부금을 모았고, 어린 학생들에게 신앙적 삶을 가르쳤다.

Holy Club은 위대했지만, 그들은 일에 기초한 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몰랐고, 자신이 거듭 남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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