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역사기행
•홈  >  사역  >  어린이역사기행

 "

목록보기

  제  목 : 기행문[최윤경] 조회수 : 1709
  작성자 : 최윤경 작성일 : 2004-01-09
새벽에 힘겹게 일어나 옷을 입고 엄마손을 꼭 잡고는 교회로 향했다. 내가 늦은건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이 일찍온 것인지 교회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목사님께서 출석을 부르시고 역사기행을 무사히 마칠수 있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다. 엄마와의 아쉬운 이별을 마치고 쌀쌀한 추위속에 손을 호호불며 목적지로 출발~
차를 타고 과자를 먹기 전까지만 해도 머리가 아프지 않았는데 과자를 먹으니까 갑자기 머리가 아프기 시작한것이다... 초콜릿이 많이 들어있는 과자여서 그런지 차안에서 먹으니까 머리가 아팠다. 원래 감기 기운도 있고 그래서 머리가 깨질것 같았다. 눈을 감고 억지로 잠을 청하려고 하면 머리가 더욱 더 아프고... 어지러운 머리를 감당못해 휘청거리며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원래는 10분안에 헤치웠을 김밥한줄을 겨우겨우 삼키고 김치찌개와 같이 먹었다. 모두 먹고 약을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머리는 계속 깨질듯이 아팠다.. 그래도 꾹 참고는 첫번째 장소로 향했다.
청도 운강고택. 이곳은 6·25전쟁때 이승만 대통령이 묵은 곳이었다. 자물쇠로 잠겨져 있어 내부를 자세히 보지는 못했지만 머리가 매우 아팠던 나에게는 어쩌면 더 나은 것인지도 몰랐다..;
청도 운강고택에는 만화정이란 곳도 있었는데 경치가 너무 좋아서 저 멀리 한양에서도 선비들이 많이 찾아왔다고 한다. 우리가 차타고 와도 빨리오면 4시간정도 걸리는데 걸어오면 1달 정도 걸릴텐데.. 그만큼 경치가 좋은 곳 이다. 나 같았으면 그냥 그런 아름다운곳이 있구나.. 했을텐데.. 옛날사람들은 좀 특이한 면이 있었던 것 같다.(내 생각이지만;)
추위속에 달리고 달려 도착한 곳은 석빙고. 석빙고는 인터넷이나 책에서만 보았는데 실제로 보니까 정말정말 신기했다. 돌들을 둥그렇게 쌓아 올렸는데 이를 홍예라고 한다. 그냥 주위에 있을때는 별로 춥지 않았지만 안에 들어가보니 정말 추웠다. 석빙고는 조선시대 때 만들기 시작했고 목빙고는 지증왕때 만들어졌다고 한다. 석빙고에 저장한 얼음은 대한을 중심으로 앞날과 뒷날 항상 응달진 곳에 구덩이를 파서 흙이 내려오지 않도록 돌로 막아놓고 물을 부어 얼음을 만들어서 저장했다고 한다. 냉동실(냉장고)이 없어도 이렇게 얼음을 만들어 저장해서 쓴 우리 조상님들이 대단하신 것 같다.
세번째로 도착한 곳은 도동서원. 서원은 지금의 중·고등학교 쯤 된다고 한다. 도동서원에는 환주문이라는 문이 있었는데 그 문은 보통 어른들은 고개를 숙이고 들어갈 정도로 작았다. 처음엔 옛날사람들이 키가 작아서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인줄로만 알았는데 고개를 숙여 겸손하라는 뜻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다.
환주문을 빠져나와 중정당 앞에 섰다. 중정당은 지금의 교실으로 공부를 가르치는 곳이라고 한다. 중정당 앞에는 돌로만든 교탁같은 것이 있었는데 이것은 정료대라고 해서 불을 밝히는 곳이라고 한다.중정당의 동과 서쪽에는 동재,서재라고 해서 기숙사가 있었다. 옛날이라도 갖출 것은 모두 다 갖춘 것이 신기 했다. 기숙사도 있고 교실도 있고.. 불 밝히는 곳도 있고..
또 달려달려와서 남평문씨본리세거지로 왔다. 남평문씨 본리세거지에는 아직까지 남평문씨들이 살고 있어서 약간은 신기하기도 했다. 목화씨를 들여와 대한민국인들에게 따뜻함을 선사해준 문익점은 남평문씨의 대표적인 사람이라고 한다. 남평문씨본리세거지에는 예쁜돌담도 있었고 여러가지 모양의 지붕도 있었는데 특히 담이 제일 인상깊었다. 요즘의 담은 돌로 쌓는다 해도 딱 맞는크기, 똑같은 크기로 만들어서 매우 밋밋하고 멋이 없었는데 돌로 만든 이 흙담은 여러가지 모양의 돌들과 아름다운 진흙의 색과 잘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고 예뻤다. 요즈음에도 이런 흙담이 많이 있었으면 좋겠다..
남평문씨본리세거지의 예쁜 흙담을 뒤로하고 도착한 곳은 육신사. 다른곳의 지붕은 팔작지붕이나 맞배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특이하게도 태고정이라는 곳은 지붕모양이 부섭지붕으로 되어있었다. 지붕의 모양이 소박하면서도 뭔가 웅장한 느낌이 드는 신비한 지붕이었다.
다음으로 도착한곳은 묘동 박 황 가옥. 중문채와 대문채가 있었는데 이 문들은 양반으로서 청빈하게 살겠다는 깊은 뜻을 담고 있다고 한다. 문에는 모든 뜻이 있는것 같다. 우리가 흔히 지나치는 것들 이 하나하나에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하니 신기했다.
이 곳에는 큰 연못이 하나 있었는데 여름에 오면 연꽃도 있고, 매우 아름답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연못 모양은 거의 네모졌는데 그 큰 네모 안에는 동그랗게 또 돌로 쌓여 있었는데 네모는 땅,동그란모양은 하늘로 조화를 뜻한다고 한다. 여름에 어떤지 꼭 와보고 싶은 곳이다.
큰 무덤들이 여러개 있는 낙산동 고분 도착[!]도굴이 많이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잘 보

 "

전체댓글 0

댓글 쓰기0/200
입력
  이전글 : 아픔을 통해 체험한 하나님의 은혜
  다음글 : 유적답사 기행문(최현석)
이전글 다음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