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3:22-25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하심이 크시도소이다. 내 심령에 이르기를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시니 그러므로 내가 그를 바라리라 하도다. 기다리는 자들에게나 구하는 영혼들에게 여호와는 선하시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살다보면 고난의 폭풍이 몰려와서 우리를 고통스럽게 할 때가 있다. 너무 고통스러워서 하나님도 믿어지지 않고, 기도를 드릴 힘도 없게 될 때가 있다. 예레미야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삶이 그랬다. 그들의 처지는 애가 3:18에 담겨 있다. “나의 힘과 여호와께 대한 내 소망이 끊어졌다.” 그런데 지쳐 원망조차 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있는 예레미야의 마음속에 어두운 밤을 밝히는 빛처럼, 희망이 솟아오른다. 그것은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 주를 찾는 자에게 가장 귀한 것을 주시는 주님에 대한 기억이다.
모세는 홍해 바다를 앞에 두고 두려워 떠는 백성들을 향해 말했다.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출14:13) 애굽의 바로에게 10가지 재앙을 행하신 여호와를 기억하라는 것이다. 또한 악인이 형통한 부조리한 현실을 바라보며, 이스라엘의 시인은 말한다. “여호와 앞에 잠잠하고 참아 기다리라.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라. 불평하지 말라. 행악에 치우칠 뿐이니라.”(시37:7-8)
믿음이란, 하나님 앞에서 입을 다무는 것이다. 우리가 입을 다물 때 하나님이 말씀을 시작하신다. 믿음이란,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우리의 삶을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이 일을 시작하신다. 믿음은 기다림이다. 구하고 찾는 자에게 선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하심 앞에 엎드려 기다리는 것이다. 이것은 자포자기가 아니다. 더는 어찌할 수 없기에 될 대로 되라는 것이 아니다. 기다림이란, 오직 하나님께만 희망을 두는 것이다.
우리가 겪는 시련은 더 좋은 것을 주기 위해서 하나님이 마련하신 우회로이다. 십자가가 영생에 이르는 우회로였던 것처럼, 시련은 하나님의 마음에 닻을 내리도록 우리를 이끌어가는 복된 길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담한 고난 속에 있다 할지라도 진실로 하나님을 만나게 되면 회색빛 고난은 돌연 총천연색 희망으로 변화된다.
혹시 우리의 작은 어깨로 메고 가기 어려운 짐들이 있는가? 가정문제, 직장문제, 경제문제, 자녀문제, 건강문제 등 수많은 문제가 짓눌러 숨조차 쉬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면 분명히 기억하라. 고생과 고통은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사랑이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 사랑으로 손길로 우리를 붙들어 주고 계신다. 그 사랑 때문에 당신의 몸을 찢어 우리를 먹이셨고, 피를 흘려 우리에게 생명을 공급하셨다. 그러므로 성찬의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 주님의 사랑을 기억하기 바란다. 그리고 모든 묶임에서 해방을 경험하는 복된 성도가 되기 바란다.